20150714

오랜만이다.

이제껏 여행기를 적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벌써 겨울에 여행했던 파리도 희미해졌고, 돌아가기 전 마지막 여행에서야 여행기를 써볼까 한다니, 무엇이든 마지막이 되어야 아쉬워지고 실감을 하게 되나 보다.

코펜하겐은 관광지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 적은 관광지들에 관심이 가지도 않았다. 교회나 성당은 이제 질리고, 성도 별로 궁금하지 않다. 이제 유적에 시들해진 지금 코펜하겐이 최적이지 않았나 싶다. 더위에도 추위에도 약한 나에게는 지금의 북유럽이 언제 어디보다 좋은 선택이었고, 이곳에서 유리언니와 동행하게 된 것도 정말 잘 맞아떨어지는 일이었다.

미술관이 수없이 많고, 길거리에도 좋은 디자인이 범람하는 이곳은 정말 너무도 살고싶은 도시다. 물론 이 생각을 바로 전 여행인 부다페스트에서도 했지만. Louisiana, National Museum, Ny Carlsberg Glyptotek, Den Frie Centre of Contemporary Art, V1 Gallery 모두 정말 너무 좋은 전시들로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 Design Museum과 Danish Design Centre를 못 간 것이 너무도 슬픈. 정말 좋은 미술관들이 너무도 많은, 축복받은 도시. 또 정말 백화점 하나가 디자인소품으로 가득 차 있고 (심지어 그 백화점 자체도 vmd부터 그래픽까지 다 완벽했다) 작은 부티크들의 아이덴티티가 확실하고, 심지어 Mikeller&Friednds에서는 핸드소프도 본인들의 테마컬러인 민트로 골라두었던. Visitor Centre에 있는 팸플릿들도 잘 디자인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짐이 엄청 많았고, 상점들의 룩북도 다 너무 좋았다. 이 곳에서 챙겨가는 그래픽이 그 어디에서보다 많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이런 곳까지 디자인이, 하고 놀랐었다면 여기 코펜하겐에서는 그냥, 쏟아지는 디자인이 일상이고, 소비와 공급의 규모가 모두 크다는 느낌.

그리고 코펜하겐에서는 멈춰 세우고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정말 멋있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여유롭게 일을 하고 있거나 자전거를 타고 내 옆을 지나간다. 너무도 멋진 장면들이 많았다. 당장 섭외하고 싶었지만 그렇게는 못하는 내 성격이 미울 정도로. 오늘은 양갈래로 올림머리를 한 올블랙의 흑인 언니가 나타났다. 배가 너무 고파서 크림치즈 베이글을 우걱우걱 먹어대던 때 그 맞은편 스토어에서 일하는 언니였는데, 나와서 체크남방에 반바지를 입고 대형견과 산책하던 아저씨와 함께 계단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셋이 너무 잘 어울려서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젊은 남자가 나타나더니 아저씨 옆에 와서 인사키스를 (입술에) 했다. 며칠 전에도 손 잡고 걸어가는 레즈비언 커플을 보고, 오늘은 조용한 버스에서 키스하는 헤테로 커플을 봤다. 여러모로 사랑에 자유로운 도시구나.

이럴 때면 정말 리우가 폐쇄적인 동네였구나, 싶다. 레인보우 플래그가 걸려있는 한 스토어를 빼고는 퀴어와 관련된 그 무엇도 본 적이 없다. 아, 포비아만 두 명 만났다. 초반에 파티에서 관심을 보였던 중국계 더치가 바로 그 파티에서 바이라는 여자인 친구의 소식을 듣고 "Thanks for telling me that," 하면서 비웃듯 말하던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말도 잘 통하고 인종차별과는 정말 거리가 먼, 오히려 표적이 될 수도 있는 그였기에 더욱 충격받았던 기억이다. S를 좋아했던 P도 그렇다. 아프리카계 프랑스인이고, 한국인에게 관심을 가질 정도라면 그렇지 않을 법도 한데 게이는 싫다고 뻔뻔하게 말했던.

그래서, 그런 점도 이 도시가 좋다. 북유럽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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